마흔을 두 해 넘기고 마흔에 관한 여러 책들을 통해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책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도전적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이 책의 저자 김혜남 님은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서 활발히 활동하시다가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인생을 다시 돌아보면서, 마흔이 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즐기기는커녕 행여 아이에게 부족하고 좋은 엄마가 안 될까 봐 스스로를 닦달하면서 살았고, 일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보다 행여 뒤처질세라 쫓기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분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한다고 서두르기 전에 아이와 눈 한번 더 마추지며 안아 주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중에서)
저자는 바쁘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마흔을 넘긴 어느 시점에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봤을 때 제일 후회되는 몇 가지 일을 적었습니다. 삶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친 채 인생을 숙제하듯이 해치워버리며 살아온 시간들이 가장 후회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하면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은 결국 우리에게 후회와 회한만을 남겨줍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인정을 받고자 애썼던 지난날들은 마치 손에서 모래가 쓸려내려가듯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마흔에는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됩니다. 내 영혼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마흔에는 찾아야 됩니다.
마흔에서 인생의 뒤를 돌아봤을 때
정신분석가인 융은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삶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혼란을 겪는 것이다. 제임스 홀리스에 따르면 우리는 1차 성인기인 12~40세까지 누구의 아들딸, 누구의 엄마 아빠, 어느 회사의 팀장으로서 가족과 사회 안에서 사회화된다. 그것은 진정한 본성에 따르기보다는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선택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키워진 결과로써의 삶에 가깝다. 즉, 진정한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마흔이 되면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 오롯이 기록된 과거의 책장을 넘기며, 이제껏 열심히 일궈 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은 손에 넣었다 해도, 내가 누구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내가 성취한 게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몰려온다. 아직도 원하는 것이 많은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시간은 계속 흐르고 우리에게 남은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만 가기 때문이다.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태도" 중에서)
마흔까지의 삶은 아마도 규정된 역할을 수행하면서 사회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에 관심을 두기보다 이 상황, 이 역할에서 내가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에서 뒤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바로 마흔입니다. 마흔에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융이 말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게 되는 시기이기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기회와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고, 사라지기 때문에 마흔의 삶을 잘 정리하고 방향을 잡지 않는다면 인생의 회의가 찾아올 것입니다.
기억하라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고통이 24시간 내내 똑같은 강도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렸다. 고통이 조금 수그러드는 시간을 기다리고, 약을 먹어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픔이 덜해 움직일 수 있거나 약 기운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나가고,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친구와 수다도 떨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에게 기다림은 언젠가부터 희망이었다. 덜 아프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반드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는 언제 이 고통이 끝날지 몰라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 힘든 시간들이 지나가고 좋은 시절이 찾아온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다르게 보낼 수 있다. 그러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기억해 두기 바란다. 당신에게도 봄은 꼭 올 것이다 ("22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들" 중에서)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앎으면서도 조금 덜 아픈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우리는 평소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호흡하는 것에 감사를 느끼지 못합니다. 일상이 되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주변을 살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거나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기가 힘이 듭니다. 인생을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낸다 할지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반드시 봄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제게는 큰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20년 넘게 고통을 견뎌가며 살아가는 삶에도 봄처럼 느껴지는 덜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과 모든 것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