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두 해 넘기고 마흔에 관한 다양한 책을 통해 마흔을 어떻게 보내야 되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은 난해 할 수 있지만, 예전에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서 고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예시를 들은 것이 기억이 나서 흥미롭게 내용을 확인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고전을 접할 때 느끼는 부담감과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흔에 읽어보는 '손자병법'을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라
살아온 날들이 많아지면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잦아진다. 흑과 백으로 편을 가르기보다는 회색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너절하고 모양 빠지고 그래서 비겁해지지만,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는 걸 알아가는 게 또한 산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내 젊은 날을 반성하는 정향서로 읽힐지 모른다. 또는 마흔 줄에 들어선 소시민이 세상을 향해 보내는 항복 선언문으로 읽힐지도 모른다. 참 창피한 자기 고백이다. 그러나 현실을 부인해서는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 현실을 인정하고 꼬리를 내릴 때는 인정사정없이 숙일 줄 아는 것 역시 용기라는 게 손자의 가르침이다. 비겁자들이 자주 말하듯,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p8)
손자병법은 전쟁의 전술과 전략에 관한 책입니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강성함을 과시했던 시대였기에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끔 전쟁이 일어나긴 해도 예전처럼 전쟁이 전부이면서 전쟁을 통해 부요하게 살아갈 자원을 얻는 행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전쟁에 관한 병법들이 우리의 삶의 전쟁을 어떻게 치를지에 대한 통찰력으로 본다 해도 크게 와닿을 것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삶의 이력들이 부정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열심히 땀 흘린 것들이 모두 휘발되는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됩니다. 현재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진단할 수 있어야 미래를 희망할 수 있습니다. 손자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숙여야 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흔에는 용기 있게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메타인지(meta recognition)가 있어야 됩니다
나를 아는 것이 먼저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을 보면, 손자는 나를 아는 건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적을 아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다못해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내가 무엇을 낼지는 알지만 상대가 무엇을 낼지는 모르므로 적에 대해 알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안다는 게 상대를 아는 것보다 더 어려울 때가 많다.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라고, 열 가지 자기 흠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결점에만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눈이 밝아도 제 코는 보지 못한다. 삼천갑자 동방삭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 적을 알고 나를 알 때 가장 필요한 것을 '냉철함'이다. 마음을 비우고 적의 위치에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있고, 적의 입장에서 적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내게 보이는 적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고, 자신이 보는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p82)
적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도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마흔에 다다랐을 때 내가 나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느낌보다는 타인의 의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한고,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흔에서는 자신 자신을 아는 것이 적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싸움에서든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정보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선장은 바로 '나'이며, 마흔에는 반드시 내가 나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인정하라
임금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윗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법이 없다. 설령 장수로 대변되는 아랫사람의 판단이 옳은 것으로 나중에 판단되더라도' 그래 네 똥 굵다' 정도의 감정만 갖는다. '이놈은 언제든 내 말을 거스를 수 있는 놈'이라는 인식, '이놈은 내 새끼가 아니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근거가 될 뿐 '이 놈은 국가의 동량(棟梁)'이라는 각성의 순간은 임금에게 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좀처럼 잘 안 되는 것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랫사람이나 후배, 밑의 직원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왠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를 못났다고 인정해 버리는 것만 같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꼰대라는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흔에는 그러한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